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누카이 쓰요시 (문단 편집) === 총리 시절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www.weblio.jp/souri29.jpg|width=240]]}}}|| || 29대 총리 취임 후 || [[입헌민정당|민정당]]의 [[와카쓰키 레이지로]] [[총리]]가 모이지 않는 [[내각]] 의견에 화나서 사임하자 [[입헌정우회]]로 다시 정권이 돌아왔고, 드디어 후임 [[총리]]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의원들과 원로들이 당시 슬슬 [[폭주]]해가던 [[군부]]를 억누를 요량으로 이누카이를 후임 총리로 선출한 것인데, 결과적으론 [[악수]]가 되어버렸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21일째)에서 [[이봉창]] 의사가 [[쇼와 덴노]]를 처단하려다 실패하게 된다([[사쿠라다몬 의거]]). 이에 따라 사임하려 했으나 덴노의 반려와 [[사이온지 긴모치]] 전 총리의 중재로 유임했다.[* 만약 이렇게 됐으면 그야말로 한 달도 안 되는 역대 최단 임기 내각이 되었을 것이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1월 8일에 있었고, 이누카이는 이 의거 당일인 1월 8일에 사임을 주청했으나 덴노가 다음 날 반려했다. 진짜 일본사 최단 재임 총리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이다. 그러나 최단임 총리인 히가시쿠니가 명줄로는 오히려 최장수(= 102세) 총리였다. 두 번째로 장수(= 101세)한 총리는 [[2019년]] 타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나카소네는 히가시쿠니와 달리 총리를 3 연임 하여 재임 기간도 길었다.] [[5.15 사건|훗날 이누카이의 운명]]을 생각하면 오히려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안전했으리라는 의견도 있어 돌이켜보면 씁쓸한 대목이다. 2월 20일에 벌어진 제18대 총선에서는 301:146으로 민정당을 크게 따돌리며 거대 여당이 되었다. 이에 힘입은 이누카이는 원로의원들의 바람대로 [[군부]]를 혹독하게 지배하려 들었고, 외교 면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온건주의 노선을 지향하려 노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시 일본 제국 기준으로의 온건주의라 한반도 식민지배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전 내각들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했다. 물론 정우회는 민정당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참전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이누카이 개인은 [[국제연맹]] 등의 여론이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 [[만주국]] 설립을 막고 일본과 [[중화민국]]이 모두 합의하는 선에서 만주에 자치정부를 두어 양국이 함께 관리하고 일본은 경제권만을 취하는 방식의 합의를 보려는 주장을 했다고. 여하간 이 시점은 일본이 전쟁에 휩쓸리냐 마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분기가 되었고, 결국 헌정 최후의 보루였던 이누카이의 죽음과 함께 일본은 그대로 [[군국주의]]의 나락으로 들어가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